훌로토(
플로토, Friedrich Freiherr von Flotow, 1812-1883)는 독일의 귀족 집에 태어나 주로 빠리(파리)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활약했으며 중년부터 독일에서 지휘자 및 작곡가로 일했다. 작품은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 Alessandro Stradella](1844년, 함부르크), [
마르타](1844년 빈)을 비롯하여, 오페라, 오페레타, 발레 등을 통해 무대 작품 약 30개를 발표했고 그 밖의 소수의 실내악이 있다. 생존 중에는 몇몇 작품이 성공하였으나 오늘날 오페라 하우스의 레퍼토리로 남아 있는 것은 [마르타]뿐이다. 1882년 70세의 생일에 [마르타] 공연 500회를 기념하기 위해 빈 궁정 가극장의 초청을 받았다. 훌로토의 오페라는 아름다운 선율로 넘치지만 극적 박력이 약하고 너무 감상적(感傷的)인 점이 약점이다. 이 오페라의 소재는 불란서의 각본가 생 죠르쥬 후작(Vernoy de Saint-Georges, 1801-1875)이 빠리 국립 오페라 극장을 위해 1844년 2월 21일에 초연된 [앙리에뜨 공주 Lady Henriette ou La Servante de Greenwich]이다. 이 발레의 일부를 훌로토가 작곡했으나 오페라 대본은 여기 의거하여 후리드리히(프리드리히, W. Friedrich)가 전 4막으로 만들었다. 영국의 전성기인 빛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낭만적이며 명쾌할 뿐만 아니라, 밝고 유쾌한 독일 코미크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힌다.
18세기 초(1710년경)
앤(Anne) 여왕 시대의 영국 요크셔주 리치몬드 근처이다. 여왕의 시종(侍從)인 해리에트는 궁중의 무료(無聊)한 생활에 지친 나머지 가까운 벗 낸시와 함께 농민의 딸로 가장하고 사촌 오빠 트리스탄과 어울려 시장에 나간다. 일꾼으로 나타난 부농(富農)의 젊은이 플런케트와 그의 의붓동생 라이오넬을 만난 두 아가씨는 사촌인 트리스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용계약을 맺는다. 그녀들의 가명은 해리에트가 마르타, 낸시는 율리아로 이름을 바꾼다. 그리고 라이오넬은 마르타에게, 플런케트는 율리아에게 반한다. 그러나 트리스탄이 보낸 마차를 타고 두 아가씨는 도망친다. 그때 여왕이 사냥터에서 돌아온다.
여왕의 시종인 해리에트도 마중을 나간다. “마르타!” 하고 부르는 라이오넬의 목소리에도 모른 척한다. 오히려 미치광이 취급을 당한다. 그를 구하기 위해 플런케트는 라이오넬이 갖고 있던 반지를 여왕에게 보이고 바로 그가 더비 백작의 자식임이 판명된다. 해리에트는 라이오넬에 대한 사모(思慕)와 후회 때문에 그를 찾아가지만 사람을 믿지 않게 된 라이오넬은 만나주지 않는다. 플런케트의 꾀로 마르타와 율리아의 모습으로 관계자 모두가 모였다. 그날의 시장을 복원한다. 라이오넬은 저도 모르게 “마르타” 하고 외치며 두 사람의 사랑은 되살아난다. 플런케트와 낸시도 맺어져서 모든 것은 해피엔드로 끝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